고장난 모니터

2009/06/01 03:23 by 무한™  

본체는 멀쩡한데
아마, 지금쯤 퍼런 로그인 화면을 떠올리며
맞는 비밀번호를 넣어주길 애타게 기다릴텐데
모니터는 계속 아무 신호도 잡을수가 없다고 하니
하필이면 왜 주말인가 계속 생각을 합니다
연락할 곳도, 손봐주길 부탁할 곳도 없으니 말입니다

당신이 그렇습니다
무슨 말이라도 있으면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을텐데
우린 이제 아무 신호도 잡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마음들 말입니다
하드디스크 읽는 소리가 지지직 들리듯이
당장 내 방안에서 당신과 연결되는 것들이 하나 두개가 아닌데
볼 수는 없고 마음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문 밖까지 들립니다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쏟아내는 얘기들을
아스팔트 바닥에 그냥 아무렇게나 흩뿌리고 들어왔습니다

돌아와 고낭난 모니터의 신호없음 표시만 들여다 봅니다

커다랗게 펼쳐진 것 같은 세상이 얼마나 좋았는지요
영화를 봐도 즐겁고, 블로그에 새 글을 올릴 때에도 마련된 큰 백지가 좋았습니다
신호없음의 글자 하나만 덩그러니 남을 줄 알았다면
조금 덜 기뻐할 걸 그랬습니다

아,
친구에게도 분명히 이야기 해 줄 걸 그랬습니다.

"사랑도, 고장날 수, 있단다"


0 트랙백 댓글 15 개가 달렸습니다.
  1. 꽃순이

    그럼, 사랑을 고치는 법을 잘 배워 둬야 겠어요.

  2. 저도 배우고 싶네요 ^^

  3. 이긍 모니터가 문제군요 ㄷㄷ
    전 요즘 하드가 종종 기절하더군요 ㅜㅜ
    집컴이라 막 쓰는편이긴한데;;;
    알고보니 파워가 엄청 약한거더군요;;;
    그래서 하드가 종종 심장쇼크로 죽더군요...
    걍 죽을때까지 놔둘려고요;;;
    그것이 운명이라면 말이죠.....

  4.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가 생각나네요.
    로미오가 줄리엣 친척오빠를 죽이고 외치던,

    "난 운명에 놀아나는 바보다"

    절실하게 와 닿습니다.

  5. khey

    비밀번호는 우리가 처음 사귀기 시작한 날.

    그 사람이 비밀번호를 만들어줬고 컴맹인 나는 그저 신기해했을뿐.

    이젠 우리가 아니라 타인일 뿐인데

    컴퓨터를 부팅할땐 늘 우리가 처음 시작했던 날을 기억하게 됩니다.

    뭐.....


    그저 그렇다구요.ㅋ

  6. 하지만
    다른 여자들도 그런 상황(?)이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만

  7. 작은마녀

    에공 제 남자친구 모니터가 얼마전에 고장났는데....꼭 무한님과 같은 그런 상황이였더랬죠..... 워런티가 남아서 고칠려고 보냈다가....UPS에서는 오후 1시쯤 도착했다고 하는데....누가 들고 날랐는지....일끝나고 집에 돌아오니까 집앞에 없다고.....너무너무 속상해 하더라고요.....

  8. 깡이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친구에게
    사랑도, 고장날 수 있다고 말을 안하셨던거 잘 하신거라 생각해요..;;
    이제 막 시작했는데 한참 새로운 모니터를 받아 들고
    신나서 이것저것 검색하고 있을 사람에게
    고장이 눈에 들어올까요..ㅡ.ㅡ;;;;;;

    모니터가 고장나버렸을 때 그 철렁함...
    전 노트북을 쓰는데 우연히 선을 발로 밟아서 책상위에 있던 노트북이 쿵하고 바닥으로 추락한 다음에 신호를 읽지 못할 때 그 철렁함...
    파워버튼을 누르면 항상 내게 당연하다는 듯 화면을 보여주었는데..
    신호 없슴에 배신감과 간절함이 동시에 밀려 온다는...;;

    사랑도 그와 같겠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에게
    그러게 ♬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제가 늘 마음에 새기는 노래죠.-_-)...)
    이런 말은 귀에 꽂혀 있는 떡볶이 덕에 잘 안 들릴거라는...

    덧> "고낭난 모니터"를 두번 죽이시는군요~~~`

  9. 사랑도 시스템 복구를 할수 있다면 ...

    어쩜 그렇게 되면 또 복구해 버리면 되지 라는

    늘 우리를 안타깝게하는 오직 한번의 소중함을 잃어 버릴수도

    있겠네요 ...

  10. 뚱냥

    가끔 새벽까지 혼자 깨어있을 때의 기분과 같네요. (지금이 그런 때인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전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데 못누르는 그런 느낌?

  11. 흠,
    고장난 모니터는 항상 그랬던거 같아요!
    우린 서로의 주파수를 읽지 못하죠~
    보이는것만 볼수밖에 없는데~

    왠지모르지만 고장난 모니터든 아닌 모니터든 진심을 보여줄 수 없다면
    모니터 차라리 안나오는게 낳을수도 더 비참해지기전에~~

  12. 고흐가되고싶어귀자른아이

    헤어지고 난 뒤
    전 제 차 안이 제일 서럽더라구요..
    항상 옆에 조잘조잘 귀찮을정도로 말이 많던 그분
    이젠 없네요~.~
    가을이 왔구나

  13. .........에휴...
    갑자기 가슴에 갑갑함이 차오르네요.

    잘읽고가요.
    아..저기 무한님. 이글..무한님 마음 얘긴가요?
    아니면 정말 모니터 얘기인가요?
    아님 그냥 소재가 생각나서 쓰신건가요???

  14. 란군ㅡ_ㅡ;

    가슴이 덜컥 했어요...
    잔고장 후에 한번 심하게 고장난 적이 있던 내 사랑이 요즘 자꾸 버퍼링을 합니다.. 늘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로 채우고 있는데도..
    자꾸만, 에러가 나네요..
    그래도 아직은 즐겁고 행복한 거에 감사합니다~

  15. NABI

    저 오늘 무한님 글 첨부터 다시 차곡차곡 읽고있는데
    이 글 읽으니 마음이 짠.....해지는것이...
    작가는 작가시네요...정말 글을 잘쓰시는거 같아요..
    부담스럽지 않게...그리고 마음에 확 다가오도록...
    쵝오!!!!!
    저도 무한님 블로그 개설때부터 들어왔었다면
    무한님이 리플 달아주셨겠죠??
    리플달아주는거 보고 무지 부러워 하고 있다는...
    암튼.. 무한님 저도 지금 아무 신호가 없어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또 생각하는 제가 너무 밉습니다.

댓글과 트랙백은 무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