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사연을 보내기 전 알아야 하는 것들
2010/06/29 15:58 by 무한™
안녕하세요. 요즘들어 커피에 설탕대신 연유를 타먹어 보고 있는 남자, 무한입니다. 오랜만에 존대를 하니 신선하군요. 꼭 뉴욕 센트럴파크 벤치에 앉아 조니워커를 마시는 기분입니다. 가보진 않았지만요. 하하하. (이게 안 웃긴가요?)
다들 아시겠지만 노멀로그에선 연애상담을 하지 않습니다. 보내주신 사연 중 일부를 각색하여 함께 들여다 보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 잠깐만요.
"그건 그냥 거기 놔두시면 돼요, 빨래는 통에 있구요."
죄송합니다. 집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자꾸 물어보셔서. 아, 사실 엄맙니다. 하하하. 어디서 웃어야 하는 지 포인트를 못 잡으셔도 괜찮습니다. 사실 이건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재미있는 개그니까요.
지금 당장 사랑이나 연애 때문에 고민이신 분들은 빨리 사연 보낼 곳이나 알려 달라고 하시겠지만, 그렇게 조바심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우리는 지구별에 소풍을 와 있는 거고, 언젠가 돌아가야 할 날이 오니까요. 보물찾기를 한다며 위험한 나무를 오르거나 가파른 절벽까지 갈 필요는 없습니다. 가보지 않았기에 꼭 거기에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거긴 위험해서 보물 숨긴 사람도 가지 않았던 곳이니 말입니다.
보물찾기 얘기가 나오니 킨더가든 다닐 때 생각이 나는군요. 아, 킨더가든을 종종 음식점 이름인 줄 아는 분들이 계시는데, 음식점이 아니라 영어로 유치원이란 뜻의 단어입니다. 전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야당2리에 있던 힘찬 킨더가든을 다녔는데, 아마 아직도 그곳엔 제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을 겁니다. 진달래반 선생님한테 "우리집에 가서 커피 마실래요?"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거든요. 한 살 더 어린, 개나리반이었을 적엔 놀이터에 앉아 개미굴을 파며 나오는 개미들을 하나하나 집어먹은 전설도 있습니다. 하하하. 여왕개미, 상큼한 녀석.
킨더가든 얘기를 꺼낸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시절 파주 통일동산 쪽으로 소풍을 간 적 있었는데, 거기서 개나리반 쌍둥이 녀석들이 하던 짓이 생각이 나서 그렇습니다. 그 둘은 제가 개미를 집어먹고 있을 때 옆에서 한 입만 달라던 녀석들 입니다. 소풍간 곳에서 전 매의 눈을 하곤 보물을 찾기 시작했죠. 보물을 숨긴 선생님의 심리를 읽으려 애를 썼습니다. 보물을 숨길 수 있는 최대 높이를 계산했고, 우거진 숲에는 무서워서 안 들어갔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사람의 흔적이 없는 곳엔 보물을 숨긴 선생님들이 가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보물찾기 중 아직 보물을 못 찾은 아이들에게 "저쪽엔 뭐가 있을까? 저쪽에도 가 보자." 라고 하는 것은 보물이 있는 곳을 의미하는 결정적 단서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살을 주고 뼈를 치는 거다.'
선생님들의 시선을 훑으며 다른 녀석들보다 빨리 보물을 찾았습니다. 재빨리 종이를 펼쳐 열어보곤 '지점토' 따위의 쓸모없는 상품이거나, '줄넘기' 같이 힘만 드는 상품은 양보했습니다. 제가 노리던 상품은 오직 1등 상품인 '36색 크레파스' 였습니다. 당시 '36색 크레파스'로 말하자면, 국민학교 고학년들 중에서도 집에 소를 좀 많이 키우는 정도가 돼야 가질 수 있는 제품이었습니다. 24색 크레파스만 가지고 있어도 다른 녀석들이 달려들어 연보라색 한 번만 쓰자며 사정하던 때였죠. 36색 크레파스라니, 은은하게 퍼져오는 석유향과 미끄러지듯 나가는 필감, 알록달록한 그 색깔들에 현기증이 날 정도의 물건이었습니다.
매의 눈을 한 채 엄청난 속도로 보물을 찾아내는 저를 보곤 선생님들이 급 당황했지만, 찾은 보물들을 나눠주자 안심하는 눈치였습니다. 1인 1보물 이었기에, 제게서 종이를 받은 녀석들은 종이를 들고 상품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보물을 양도받은 녀석들과 자력으로 보물을 찾은 녀석들이 대부분 돌아갔습니다. 스스로 보물을 찾은 녀석들은 지들이 찾은 종이에 쓰여 있는 것을 크게 말했기에, 크레파스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쌍둥이 녀석들과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전 이미 '연필'과 '노트', 이렇게 두 장의 보물을 찾은 뒤였습니다. 적당히 협상을 해 두 녀석을 돌려보내고 나면,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 있는 저를 보고는 선생님이 다가오리라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럼 살짝 애처로우면서 슬픔이 가득담긴 눈을 하곤,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 "저쪽엔 뭐가 있을까?"라며 선생님이 보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시나리오였죠.
쌍둥이1 - 싫어. 나 크레파스 가질 거야.
쌍둥이2 - 나도.
두 녀석이 쌍으로 지ㄹ, (아, 이런 단어 쓰면 안되지) 쌍으로 거절했습니다. 크레파스는 하나기 때문에, 녀석들이 찾는다고 해도 둘 중 하나는 연필이나 노트를 가져야 한다고 설득해 봤지만 듣지 않았죠.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바로, 무식한데다가 주관까지 뚜렷한 사람입니다. 게다가 그런 녀석이 둘이었으니, 열심히 찾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죠.
36색 크레파스는 누가 찾았을까요?
그게 바로 접니다. 쌍둥이 녀석들은 나무에 난 구멍을 나뭇가지로 쑤시고, 큰 돌 밑을 파는 등 멍청한 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찾아보지 않은 곳에 보물이 숨겨있다고 생각한 거죠. 나중엔 땅까지 파기 시작하더군요. 보다못한 선생님이 말리며 "저기 벽쪽엔 가 봤어?"라고 말하는 순간, 곰의 허리와 범의 다리를 가지고 있던 제가 한걸음에 달려가 돌벽틈에 꽂혀있는 '36색 크레파스'를 찾았습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사연을 주시는 많은 분들이 저 옆에 있는 돌벽은 놔두고, 애꿎은 나무구멍을 쑤시거나 큰 돌 밑을 파고 있습니다. 저도 '삽질 기술사' 자격증이 있다면 1회 시험에서 수석합격 할 정도로 삽질을 잘 합니다. 천삽일휴(천번 삽질에 한번 휴식)정신으로 파본 적도 있습니다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키보다 높게 판 까닭에 나중에 나올 때 고생만 하죠.
대부분 사연을 보내시며 자신이 '삽질'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보물찾기에는 아무 필요 없는 삽질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삽을 놓아버리면, 내가 끝내는 것 같아서...' 따위의 마음이 들기에 삽을 놓지 못합니다. 그때는 "야, 뭐해? 올라와." 라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손을 내밀어 그 구덩이에서 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뭐, 깊지 않다면 스스로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사연을 보내려고 마음을 먹거나 이 글을 읽을 정도가 되면 상당히 양호한 상태입니다. 정말 힘들 때는 조언이고 사연이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죠. 누구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자기 연애 이야기를 들려 줄 형편이 못 됩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횡단보도에 서서 달려오는 차에 당장 뛰어들 생각을 하게 되죠. 물론, 꼬꼬마 때의 일입니다. 손발이 로그아웃하는 그 멘트 있지 않습니까.
'내가 죽으면... 그땐 내 생각을 해줄까?...'
그러나 달려오는 차에 뛰어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고 맥박보다 빨리 생각이 변하죠. 죽느냐 사느냐 죽느냐 사느냐, 당시엔 노멀로그가 없었기에 전 차도로 한 발짝 내 딛었습니다.
"빠아아아아아아아앙"
'아 깜짝이야. 아쒸, 놀랐잖아.'
깜짝 놀라서 다시 뒤로 물러났죠. 잠시 후 의지가 본능을 이기지 못함을 깨닫고는 자신에게 더욱 화를 냅니다.
'이번엔 진짜 가는 거야.'
달려오는 승용차, 눈을 감은 채 터벅, 터벅, 두 걸음을 걸어나갑니다. 터벅, 세 걸음, 이를 꽉 물고, 터벅, 터벅, 다섯 걸음, 터벅,
'응?'
눈을 떠 보니, 파란불로 바뀌었습니다. 승용차의 운전자가 '저 색히 뭐하는 거야?' 라는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빠른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다 건넙니다. 그 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면, 지금 이러한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겁니다. 지나고 보면, 그건 정말 학창시절 끔찍한 성적표를 받은 것과 별 차이 없는 일입니다. 전교 10등 아래로 떨어지다니(응?), 집에 가서 부모님을 어떻게 볼 지 걱정이 되죠. 여러분도 그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끔찍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가출을 생각할 정도로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지금 돌아보면 귀여워서 웃음이 다 날 정도죠.
연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지나 지금의 상처가 흉터가 되고, 물집이 잡힌 곳에 굳은살이 박이고 나면, 지금의 '죽느냐, 사느냐'의 고민은 훗날 '아, 그땐 내가 즤랄꾸러기였지.' 라며 한줄요약 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연애상담'이 아닌 '연애사연모집'을 하고 있습니다. 연애상담이 나뭇구멍 쑤실 막대기를 권하는 거라면, 연애사연을 모집하고 그 사연을 함께 살펴보는 것은 돌담과, 잔디와, 하늘과, 이 소풍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당장 "뭘로 쑤셔야 보물을 찾을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이 아닌, 자신의 보물찾기 이야기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차근차근 적어주신 이야기는 각색을 통해 보물찾기 하는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사연에 훼이크를 쓰지 않으셔도 다 읽습니다. 종종 "팬이에요. 노멀님."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제 닉은 노멀이 아닙니다. 또, "몇 년 전부터 쭉 눈팅하던 독자입니다." 라고 하시는데, 노멀로그는 오픈한 지 이제 1년 지났습니다. 그리고 "노멀로그에 있는 글 다 읽었어요. 너무 좋아요.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라는 분도 있는데, 군생활 매뉴얼만 봐도 언니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훼이크를 쓰지 않으셔도 사연을 다 읽으니, 타인이 봐도 알아볼 수 있는 사연을 보내시는 것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사연에 나온 사람들의 성별을 알 수 없거나, 누가 누굴 좋아한다는 건지 몇 번 읽어도 이해가 안가는 사연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사연은
normalog@naver.com
이 주소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개별적인 답장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무시하는 게 아니라면 답장을 주세요."라거나 "짧게라도 회신 부탁드려요."라고 적어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제 사정도 좀 생각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도 블로그에 글 쓰는 시간 외엔 밥벌이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루에 수십통, 많을 때는 수백통이 오는 메일에 전부 답장을 하다보면 전 일을 못해서 돈을 못 벌고, 나중에 태어날 제 아이의 학비를 댈 돈이 없어 허덕여야 하고, 가난한 집이 싫다며 아들이 뛰쳐나가 방황의 길로 접어들고, 그러다 어느 날 손자라며 아기를 데려오고, 그 아기가 자라 사춘기에 접어들 때쯤, 지 아빠에게 "아빠, 우리는 왜 이렇게 가난한 거야?" 라고 물었을 때, "이게 다 네 할아버지 때문이야."라고 답한다면, 슬픈 삼대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슬픈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답장 없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자, 그럼, 지구별에서의 소풍을 만끽합시다!



